15.0%는 아이스크림 전용 숟가락을 만들어요. 심지어 개당 3만 원이 훌쩍 넘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공짜로 주는 게 아이스크림 숟가락인데, 그걸 누가 돈 주고 사겠냐고요? 15.0%의 기획 의도를 알고 나면, 나도 모르게 사고 싶어질 거예요.
내가 매일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스크림 애호가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발생하는 불편함을 매일같이 겪을 거예요. 사소한 불편함이라도 빈도가 잦아지면 일상을 해쳐요. 15.0%는 이 지점을 파고 들었어요. 아이스크림 애호가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발생하는 익숙한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했어요. 숟가락을 디자인해서요.
15.0%는 냉동실에서 갓 꺼낸 아이스크림을 퍼먹을 때 발생하는 불편에 주목했어요. 아이스크림이 너무 꽁꽁 얼어있어 기존 숟가락으로는 퍼내기가 쉽지 않죠. 억지로 아이스크림을 퍼내다 손이 아픈 것도, 아이스크림이 녹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달갑지 않고요.
15.0%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15.0% 미리보기
• 아이스크림도 어른의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다
• 사소한 불편도 쌓이면 기회다
• 아이스크림 애호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것
• 컨셉에 충실한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
• 시계 회사가 아이스크림 전용 숟가락을 만든 이유
‘크레이프(Crêpe)’는 얇게 구운 팬케이크에 각종 토핑을 올려 먹는 프랑스 음식이에요. 프랑스가 종주국이지만, 디저트 강국인 일본으로 건너 오면서 더 다채로워졌어요. 듬뿍 올라간 생크림은 기본 딸기, 바나나, 초콜릿, 캐러멜, 아이스크림 등 각종 토핑을 올려 달콤한 디저트의 대명사가 되었죠.
일본에서 ‘크레이프’하면 도쿄 하라주쿠의 상징이기도 해요. 하라주쿠의 중심가인 타케시타 도오리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크레이프 상점을 자처하는 ‘마리온 크레이프(Marion Crêpes)’가 화려한 크레이프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10대들의 메카인 하라주쿠에 자리한 이 크레이프 가게는 달콤한 맛과 만화같은 비주얼로 학생들의 마음을 이끌어요.
ⓒMarion Crêpes
ⓒMarion Crêpes
뿐만 아니라 크레이프는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자주 등장해요. 특히 10대 여학생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에는 매우 높은 확률로 크레이프가 길거리 간식으로 나오죠. 덕분에 일본에서 크레이프는 주로 어린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간식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런데 크레이프에 대한 이런 선입견에 도전장을 내민 가게가 있어요. 도쿄 긴자에 위치한 ‘파를라(Parla)’예요. 파를라는 어린 여학생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크레이프를 만들어요.
‘달콤해지기를 망설이지 마세요.(Don’t hesitate to be sweet.)’
파를라 간판에 써 있는 말이에요. 크레이프는 사실 누구나 좋아할 수 있어요. 다만 단 맛 위주의 토핑이나 형형색색의 크레이프 가게 때문에 어른들이 선뜻 크레이프 가게에 들어서기가 망설여질 뿐이에요. 하지만 파를라에서는 중년 남성이나 심지어 할아버지도 이 곳에 들러 크레이프를 사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어떤 크레이프 가게이길래 편견을 뒤집고 새로운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요?
ⓒ시티호퍼스
먼저 파를라는 크레이프에 올라가는 토핑에 변주를 줘요. 새콤달콤한 맛에 중점을 둔 기존 크레이프와는 달리 고소하고 깊은 풍미를 내는 재료를 사용해 어른들의 입맛을 저격해요. 피스타치오, 헤이즐 넛, 밤 크림, 커피 젤리 등 자극적인 맛보다는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재료들이 주를 이뤄요.
ⓒ시티호퍼스
여기에 더해 블루 치즈, 무화과 콩포트, 트러플, 심지어 캐비어까지 술 한 잔을 부르는 토핑도 있어요. 술 안주로 손색 없는 크레이프 앞에 술이 빠질 수 없죠. 파를라는 크레이프와 함께 페어링할 술을 판매해요. 달콤한 디저트의 대명사였던 크레이프가 훌륭한 술 안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죠. 판매하는 술의 종류는 매번 다르지만 맥주, 위스키, 럼 등 다양한 술이 준비되어 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가격대도 고급스러운 식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기존 크레페에 비해 더 높은 편이에요. 마리옹 크레이프의 가격이 400~700엔(약 4천~7천 원) 정도인데 반해, 파를라의 크레페는 1천 엔이 훌쩍 넘고 캐비어가 들어간 크레이프는 무려 2,592엔 (약 2만 6천원)이에요. 여기에 술까지 한 잔 곁들이면 인당 2만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해요. 가격대도 학생들보다는 어른들을 타깃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가격대 뿐만 아니라 검정색과 골드로 디자인한 BI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는 크레이프 가게에 중후한 매력을 더해 줘요. 파를라는 메뉴와 브랜딩을 통해 여학생들의 대표 간식인 크레이프를 어른들을 위한 디저트이자 안주로 업그레이드했어요. 잠재 시장을 더 키운 셈이죠. 어쩌면 크레이프를 좋아하던 어른들이 자신의 취향을 좀 더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을지도 모르고요.
아이스크림도 어른의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다
비단 크레이프 뿐일까요? 크레이프처럼 아이들의 간식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간식이 또 있어요. 바로 아이스크림이에요. 도쿄의 ‘15.0%’도 이 지점을 노렸어요.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는 어른들을 위한 브랜드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죠.
그런데 크레이프와 다르게, 아이스크림의 경우 이미 시중에 맛차, 밤 등 어른들을 타깃한 식재료로 만든 아이스크림들이 많이 있어요. 심지어 도쿄에는 사케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사케아이스(Sakeice)’와 같은 아이스크림 전문점도 있고요.
반면 15.0%는 어른들의 입맛에 맞춘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대신,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것을 ‘라이프스타일’로 접근해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에 주목해 그 불편함을 해소하고, 아이스크림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제품들을 제안하죠.
ⓒ15.0%
15.0%의 로고에는 ‘나의 친애하는 아이스크림 애호가들(My dear ice cream lovers)’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요. 로고에 내세울 정도로 아이스크림 러버들을 향한 마음이 진심인 브랜드죠. 덕분에 15.0%의 제품을 사용하다 보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입맛이 유치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해요. 아이스크림 러버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이 브랜드, 궁금하다고요?
사소한 불편도 쌓이면 기회다
라이프스타일은 일상을 사는 방식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아이스크림이라는 제품을 넘어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상에 대해 생각하죠. 15.0%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없애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일상을 더 즐겁게 만들어요.
15.0%가 주목한 불편함은 컵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서 갓 꺼냈을 때 바로 먹기가 어렵다는 점이에요. 아이스크림이 꽁꽁 얼어 있어 숟가락으로 바로 뜰 수 없고 아이스크림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죠. 딱딱하게 얼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애써 푸는 것도 어렵고, 기다리기까지 녹는 것도 썩 유쾌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아이스크림 집에서 주는 플라스틱 숟가락이나 나무 숟가락은 얇고 약해 사용성이 좋지 않아요. 그렇다고 밥 숟가락은 아이스크림을 먹기에 지나치게 크죠.
어쩌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이야 참을 만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좋아해 매일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이라면 어떨까요? 아이스크림 덕후들에게는 매일같이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번씩 겪어야 하는 불편함일 거예요. 강도는 약할지 몰라도, 빈도가 높아 충분히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어요.
15.0%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루미늄’으로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디자인해요. 알루미늄은 열 전도율이 높아 숟가락을 손에 쥐는 순간 손의 열이 숟가락에 전달되어요. 그리고 그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푸면 손의 열이 아이스크림에 전해져 아이스크림을 바로 뜰 수 있죠. 아이스크림이 녹기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숟가락이 아이스크림에 닿는 순간부터 아이스크림을 녹이면서 퍼낼 수 있는 거죠.
한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 손잡이 부분은 통통하게 디자인했어요. 그립감을 개선하고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떠도 손이 아프지 않도록한 디자인이에요. ⓒ15.0%
숟가락이 아이스크림에 닿는 부분부터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15.0%
15.0%를 디자인한 사람은 ‘테라다 나오키(Terada Naoki)’라는 건축 디자이너예요. 그는 일상의 풍경을 1/100로 축소한 종이 건축 모형인 ‘테라다 모케이(Terrada Mokei)’를 만든 사람이기도 해요. 본업은 건축가지만, 그의 건축가적 역량을 건축에만 쓰라는 법은 없지요.
ⓒ15.0%
“건축가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재료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요. 물리적인 특성이나 강도, 질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같은 공간이라도 품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테라다 나오키가 15.0%의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며 했던 말이에요. 재료의 형태나 아름다움보다 특정 소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합리적 정당성을 찾는 건축가의 습관이 제품 디자인에도 적용된 것이죠. 덕분에 열 전도율이 높은 알루미늄의 특성을 포착해 아이스크림 전용 숟가락을 개발하게 된 것이고요.
타사 알루미늄 숟가락, 타사 구리 숟가락, 타사 스테인리스 숟가락 등 다른 아이스크림 숟가락들과 열 전도율을 비교한 실험에서 15.0%의 숟가락이 월등하게 높은 성능을 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15.0%
아이스크림 애호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것
15.0%는 알루미늄 아이스크림 전용 숟가락을 디자인한 것을 시작으로, 아이스크림 라이프를 더 즐겁게 즐기기 위한 약 20여 가지 제품을 출시해요. 15.0%의 제품 라인업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읽을 수 있어요. 15.0%의 제품들은 아이스크림 숟가락 용도를 ‘세분화’하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라이프에 ‘재미’를 더하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라이프에 ‘휴대성’을 높여주거든요.
먼저 15.0%는 기본형 아이스크림 숟가락인 ‘No.01 바닐라’ 외에도 ‘No.02 초콜릿’, ‘No.03 딸기’ 숟가락을 개발했어요. No.01 바닐라는 숟가락 팁(Tip)이 둥근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지만, No.02 초콜릿은 네모난 모양으로, No.03 딸기는 포크처럼 디자인되어 있어요.
ⓒ15.0%
No.02 초콜릿은 아이스크림 컵 바닥 모서리에 마지막 남은 아이스크림까지 깔끔하게 긁어 먹을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이에요. No.03 딸기는 입자가 굵은 셔벗을 긁어 먹기에 좋은 디자인이죠.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발생하는 불편을 세분화해,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아요. 불편을 세분화하니, 제품의 용도 또한 세분화되어 사람들의 숨은 니즈를 충족시키는 제품 출시가 가능해 졌어요.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의 종류를 떠올려 볼까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파르페’도 자주 먹기 마련이에요. 파르페는 긴 컵에 아이스크림과 과일, 과자 등 각종 토핑을 올려 먹는 디저트로 기존 숟가락보다 긴 숟가락이 필요해요. 그래서 길이를 늘린 파르페 전용 숟가락을 런칭하기도 했어요.
3가지 파르페 전용 숟가락 역시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팁 부분의 디자인을 다르게 디자인했어요. ⓒ15.0%
다음은 아이스크림 라이프에 재미를 더할 차례예요. 15.0%는 아이스크림 전용 숟가락에 이어 콘(Corn) 모양의 아이스크림 전용 컵을 디자인했어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후 바삭한 콘 부분을 과자처럼 먹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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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은 디테일로 아이스크림 컵의 완성도를 높여요. 도자기로 만든 이 컵은 손잡이 부분을 무광택 처리해 실제 아이스크림 콘 같은 질감을 연출했어요. 여기에 더해 아이스크림 콘의 격자 무늬를 양각으로 새겨 미끄러짐을 방지했고요. 한편 컵의 안쪽은 이중 벽 구조로 디자인해 내부에 공기층이 있어요. 이 빈 공간이 단열효과를 내 손으로 컵을 잡아도 손이 시리지 않고, 손의 열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도 방지할 수 있어요.
아이스크림 컵의 단면이에요. 컵의 내부를 이중 구조로 디자인해 기능성을 높였어요. ⓒ15.0%
아이스크림 애호가들의 고민을 위트있게 풀어낸 제품도 있어요. 바로 아이스크림 티셔츠예요. 하얀색 티셔츠에 아이스크림을 흘린 듯한 무늬를 프린트해,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흘려도 마치 원래 있는 패턴처럼 보여요. 아이스크림이 옷에 묻을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아이스크림 티셔츠에는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넣을 수 있는 포켓도 있어요. ⓒ15.0%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도록 휴대성을 강화한 제품들이 눈에 띄어요. 기존의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더 작고 가볍게 디자인하고, 패션 아이템처럼 착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여기에 휴대하기 편하도록 숟가락 케이스도 함께 개발했죠. 그런데 일반적인 숟가락 통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애호가임을 드러내고 위트 있는 장신구처럼 들고 다닐 수 있는 케이스를 개발했어요.
ⓒ15.0%
실리콘으로 만든 케이스의 끈과 고리 부분을 이용해 가방이나 바지에 액세서리처럼 갖고 다닐 수 있어요. ⓒ15.0%
컨셉에 충실한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
아이스크림 전용 숟가락이라는 컨셉은 어렵지는 않지만, 생소할 수는 있어요. 그래서 15.0%는 컨셉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을 고민했어요. 15.0%라는 이름은 일본의 식품위생법에서 유래했어요. 고형분유를 15% 이상 함유한 제품만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를 수 있거든요. 동시에 기억하기 쉽고, ‘이름이 왜 15%지?’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이기도 하고요.
15.0%는 로고 디자인으로도 브랜드의 컨셉을 드러내요. 15.0%의 로고를 디자인한 그래픽 디자이너 미하야 아와쓰지(Mihaya Awatsuji)는 모노톤을 선택했어요. 유치하지 않으면서 어른스러운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죠. 아이스크림은 어린 아이나 학생들이 즐겨 먹는다는 인식을 깨고 어른들을 타깃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이런 진중한 느낌의 로고는 15.0%의 제품과도 잘 어울려요. 15.0%의 숟가락은 장인이 수제로 만드는 데다가, 기술력이 더해져 숟가락 하나에 3만 원이 훌쩍 넘으니까요. 검정색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심플한 서체는 가독성을 높이고, 시크한 느낌을 주어 장인정신과 기술력이 결합된 15.0%의 숟가락에 안성맞춤이에요.
제품 패키지 또한 15.0%의 정체성에 힘을 더해요. 종이로 만든 컵에 15.0% 숟가락을 꽂아 마치 아이스크림 컵에 숟가락이 꽂혀 있는 듯한 비주얼을 연출해요. 이 패키지를 케이크 상자처럼 손잡이가 있는 종이 케이스에 한 번 더 담고요. 매장에 진열하기도 쉽고, 한 눈에 아이스크림 스푼임을 알아볼 수 있는 외관 디자인을 고안한 것이죠.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선물로 포지셔닝하는 건 덤이고요.
ⓒ15.0%
시계 회사가 아이스크림 전용 숟가락을 만든 이유
15.0%는 테라다 나오키가 디자인했지만, 이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는 ‘타카타 렘노스(Takata Lemnos)’라는 회사예요. 타카타 렘노스는 동, 황동, 알루미늄, 주석 등을 주조하는 제조사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원래는 세이코(Seiko)에 시계 부품을 납입하다 지금은 여러 개의 벽시계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어요.
“우리는 더 아름답고 감각을 자극하는 창조의 장소입니다. 우리는 제조를 통해 사회의 번영에 기여하고, 모두의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혁신적이고 지속적인 아름다움을 제안합니다.”
타카타 렘노스의 기업 철학이에요. 시계를 주로 생산하지만, 꼭 시계만을 고집하지 않아요. 자신들의 제조 기술을 활용해 풍요로운 삶을 위한 혁신적인 제품들을 생산하고자 하는 뜻을 갖고 있죠. 이러한 기업의 철학은 심미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져요.
그래서 타카타 렘노스는 디자이너들의 협업으로도 유명해요. 지금까지 40명이 넘는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해 왔어요. 타카타 렘노스는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을 ‘외주’를 준다는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아요. 대신 전문 분야나 소재 등 각 디자이너의 장점을 끌어내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공유한다는 관점으로 협업을 진행하죠.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과의 관계는 타카타 렘노스의 존재를 뒷받침한다고까지 말해요.
15.0%도 디자이너와 디자인에 대한 타카타 렘노스의 철학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어요. 원래 타카타 렘노스는 신제품 출시를 위해 테라다 나오키에게 협업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테라다 나오키가 완전히 다른 제안을 한 거죠.
“아이스크림 숟가락은 알루미늄 소재의 특성을 살린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확신했어요. 또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죠. 나는 그것이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테라다 나오키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타카타 렘노스에게 알루미늄 소재의 특성을 활용한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동시에 클라이언트의 요청과 전혀 관련 없는 것을 제안했기에 거절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타카타 렘노스는 예상 밖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시계는 아니지만 타카타 렘노스의 철학과 맞닿은 제품이기 때문이죠. 15.0%의 아이스크림 숟가락은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혁신적인 제품이었어요. 더불어 건축가로서 강점을 가진 테라다 나오키의 역량과 타카타 렘노스의 주조 기술이 빛을 발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고요.
뚜렷한 회사의 비전, 기존 사업에 매몰되지 않는 시각, 그리고 디자이너에 대한 존중 덕분에 15.0%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요. 타카타 렘노스가 재치있는 신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