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디자인부터 건축까지, 거장들의 세계관으로 콜라주를 만들다

비트라 캠퍼스

2024.10.23



현대 거장 건축가 프랭크 개리, 자하 하디드,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곳이 있어요. 스위스의 가구 브랜드 ‘비트라’가 운영하는 ‘비트라 캠퍼스’죠. 비트라는 어쩌다 이런 거장들의 건축물을 한 데 모으게 된 걸까요?


1981년, 비트라의 생산 시설에서 화재가 났어요. 비트라의 창업 가문인 펠바움 가족은 생산 시설을 재건하면서, 아예 디자인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는 대규모 문화 공간을 만들기로 하죠. 이게 비트라 캠퍼스의 시작이었어요. 


비트라 캠퍼스에는 생산 시설 뿐만 아니라 공원, 디자인 박물관, 소방서 등 다채로운 공간들이 어우러져 있어요. 무려 30년에 걸쳐 건축가 1명이 하나의 건물을 완성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어요. 현재 비트라 캠퍼스는 연 평균 35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관광 명소이기도 한데요. 비트라는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공간을 디자인했을까요?


비트라 캠퍼스 미리보기

 #1.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 왕국의 탄생 - 비트라

 #2. ‘프리츠커상 예선 무대’가 되어버린 이 곳 - 비트라 캠퍼스

 #3. 가구 회사의 박물관에서 펼쳐지는 일 -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컬렉션을 전시하는 이유




세계 최대의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세계 최고의 디자인 박물관에서 특별한 전시를 열고 있어요. 2024년 9월 21일부터 2025년 5월 4일까지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Vitra Design Museum)’에서 진행되는 진행되는 <Nike: 형태는 움직임을 따른다(Nike: Form Follows Motion)>예요.


이번 전시는 나이키의 역사를 총망라한 첫 번째 박물관 전시예요.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나이키의 시초는 스포츠 연구 회사라는 것을 대중에게 상기시키는 거죠. 나이키가 그저 ‘스우시’ 로고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요.


특히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건 나이키의 브랜드 아카이브 공간 DNA예요. 미국 오리건 주에 위치한 이 익명의 공간은 지금까지 대중에게 비공개였죠. 스니커즈 마니아, 디자이너들에게 나이키의 아카이브는 마치 신화 같은 것이었어요. 이번 전시에는 이 DNA에 있는 프로토타입 제품, 단발성 제품, 잘못 제작된 제품 등 총 20만 개에 달하는 유물을 살펴볼 수 있어요.


ⓒVitra 


이와 함께, 나이키 전시가 열리는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도 다시 한 번 주목 받고 있어요.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은 스위스의 가구 브랜드 ‘비트라’의 생산 시설이자 문화 공간인 ‘비트라 캠퍼스’ 안에 위치한 박물관이죠.


비트라 캠퍼스는 그 역할이 독특해요. 분명 처음엔 생산 시설을 목적으로 지어진 공간인데, 지금은 매년 약 35만 명이 찾는 디자인 문화 관광지가 되었거든요. 박물관 안에는 180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구들의 컬렉션이 있고, 캠퍼스 내 건물들을 지은 건축가들은 안도 다다오, 프랭크 게리와 같은 현대 거장들이에요.


한 마디로 디자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이 곳에서, 대중 브랜드 나이키의 전시라니. 어딘가 오묘한 조합이에요. 비트라는 왜 이런 박물관을 만들고, 대중을 위한 전시를 열고 있는 걸까요?


ⓒVitra 



#1.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 왕국의 탄생 - 비트라


유럽을 대표하는 스위스의 가구 브랜드 비트라. 현대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려면 비트라를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지도 몰라요. 그만큼 비트라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크게 자리 잡고 있어요. 구글, 디즈니, 애플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비트라의 가구를 사용하죠. 


비트라는 한 부부 창업가의 작품이에요. 1937년, 빌리 펠바움은 스위스 바젤에 있는 한 비품 매장을 인수했어요. 그리고 그의 아내 에리카 펠바움이 1950년, 독일 국경선 바로 건너편의 이웃 도시 바일 암 라인에 제조 시설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비트라’라는 이름을 지었죠. 진열장을 의미하는 독일어 ‘Vitrine’에서 따온 이름이었어요.


비트라가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1957년, 찰스&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 부부의 가구를 유럽과 중동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어요.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인 임스 부부의 제품은 원래 미국의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허먼 밀러’에서만 판매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빌리 펠바움이 미국 여행을 하면서 임스 부부의 의자를 인상 깊게 보았고, 허먼 밀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게 됐죠.


임스 부부는 지금까지도 비트라에 뼛 속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저 임스 부부의 이름으로 비트라가 유명해졌을 뿐 아니라, 비트라의 경영 철학까지 임스 부부에 맞춰 생각했거든요. 가령, 비트라에서는 중요한 디자인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임스 부부라면 뭐라고 말할까?’ 생각한다고 해요. 임스 부부가 사망한 이후에도 임스 가족들과 긴밀히 연락하며 일하죠. 비트라는 유럽과 중동에서 유일하게 공인된 임스 제조업체이기 때문에, 비트라라는 이름이 바로 임스의 ‘진품’을 판단하는 조건이 됐어요.


1961년 임스 사무실을 방문한 빌리와 에리카. ⓒVitra 


임스 라운지 체어 ⓒVitra 


임스 부부와의 협업에서 알 수 있듯, 비트라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어요. 가구 디자인 브랜드인데도 불구하고, 사내 디자이너가 없다는 거죠. 비트라의 모든 제품은 오로지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져요. 비트라는 지금껏 임스 부부 외에도 베르너 팬톤, 노먼 포스터, 이사무 노구치, 재스퍼 모리슨과 같은 현대 산업 디자인의 거장들과 함께 일해왔어요.


비트라는 이렇게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과정을 ‘비트라 프로젝트’라고 불러요. 다양한 디자이너의 개성과 창조력을 통해, 회사가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인 거예요.


“우리가 이를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사업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작업은 일상 생활 속 영감, 미적 즐거움이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디자인이 이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비트라 프로젝트의 목적은 일상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죠.”

-롤프 펠바움 비트라 명예 회장, 비트라 매거진


비트라가 내부 디자이너를 고용하지 않는 이유는, ‘디자인이란 한 사람의 세계관’이라는 가치관 때문이에요. 특히 디자인에 대한 가치관은 임스 부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임스 부부는 디자인이 ‘필요성이 우선이어야 하고, 스타일이 과잉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해 왔어요. 그래서 비트라는 지금껏 늘 자신만의 기준으로 일상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온 디자이너들과 일해왔죠. 단순히 예쁘게 보이려는 디자인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관이 있는 디자이너들과요.


ⓒVitra 


그래서 비트라의 제품들은 ‘비트라의 색깔’보다 ‘디자이너의 개성’이 더 묻어 나요. 자칫 잘못하면 ‘오합지졸’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요? 비트라 역시 ‘이 다양성이 때때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인정해요.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죠. 애초에 비트라는 일상 생활에는 정해진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게 오히려 더 아름다운 거죠.


“우리는 가정, 사무실 및 공공 장소를 엄격하게 분리된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연결된 환경이죠. 우리는 필요에 따라 플라스틱 의자만큼 저렴한 제품이나, 임스 라운지 체어처럼 고급스러운 제품을 모두 만듭니다. 또한,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동시에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죠. 전시와 같은 형태로 고전 유산에 헌신하는 한편, 현대 디자인을 같은 열정으로 홍보합니다.”

-롤프 펠바움 비트라 명예 회장, 비트라 매거진


이와 같은 가치관으로 탄생한 대표 제품이 덴마크 디자이너 베르너 팬톤과 함께 제작한 팬톤 체어예요. 팬톤의 디자인 개성과, 비트라의 기술력이 합쳐져 세계 최조 일체형 플라스틱 의자가 탄생했죠. 비트라의 디자인 가치관에 맞게, 디자인의 세계관을 살리면서도 스타일이 과하지 않았고, 가정이든 사무실이든 모든 곳에 어울리는 의자예요.


팬톤 체어 ⓒVitra 



#2. ‘프리츠커상 예선 무대’가 되어버린 이 곳 - 비트라 캠퍼스


1977년, 비트라의 대표 자리는 빌리와 에리카의 아들, 롤프 펠바움이 맡게 돼요. 롤프 펠바움은 무엇보다 ‘아카이브’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는 1980년대 초부터 현대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컬렉션이 많아지면서 아예 박물관을 만들기로 하죠. 그러던 찰나 1981년, 바일 암 라인의 공장에 불이 나면서 생산 시설을 다시 지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이참에 롤프는 아예 비트라 프로젝트의 정수가 되는 캠퍼스를 만들고자 했죠.


그렇게 1981년 비트라 캠퍼스의 초기 설계가 시작되었고, 2009년 마지막 건축 의뢰가 있기까지 30년이 걸렸어요. 비트라 캠퍼스는 건축과 디자인을 사랑한다면 죽기 전에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으로 꼽혀요. 생산 시설, 공원, 디자인 박물관, 소방서 등이 다채롭게 이루어진 이 곳은 현대 거장 건축가들의 집합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Vitra 


비트라에서 판매하는 가구가 디자이너의 세계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듯, 비트라 캠퍼스 역시 건축가들의 세계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비트라는 당시 개성이 뚜렷한 크리에이터들을 섭외했죠.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안도 다다오…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건축가들이지만 당시엔 모두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 상인 프리츠커상을 받기 전이었던 걸 감안하면, 롤프 펠바움의 안목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죠.


그런데 비틀는 어떻게 이 거장들을 모을 수 있었을까요? 롤프 펠바움은 비트라에서 일하기 전, 뮌헨의 건축가 협회에서 컨설턴트로 일했어요. 그래서 당시 건축 흐름을 알고 있었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린다고 느꼈죠. 무엇보다 아티스트들의 세계관이 중요한 비트라인 만큼, 롤프는 모더니즘에 맞서지 않고 이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건축가들에게 관심을 가진 거예요.


이들의 건물을 잠시 살펴볼까요?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캠퍼스 내의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을 설계했어요. 프랭크 게리는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 로스 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등의 건축물로 유명해요. 그는 건물 구조를 뒤틀리게 설계하는 등, 파격적인 해체주의 건축물로 유명하죠. 한국에서는 청담동의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그의 건물을 만나볼 수 있어요. 역시 이리저리 휘어진 모습의 외관이 독특해요.


그렇다면 그가 설계한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은 어떨까요? 한 건물에 타워, 경사로, 큐브의 형태가 뒤섞여 있어요. 약 700제곱미터의 전시 공간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큰 창문을 통해 지붕으로 햇빛이 들어오죠. 외벽은 흰색 석고와 아연판으로 만들었는데, 마치 조각조각 깨져 있는 느낌을 줘요.


ⓒVitra 


자하 하디드의 소방서도 인상 깊어요. 비트라는 화재로 공장을 잃으면서, 캠퍼스를 만들 땐 아예 자체적으로 소방서를 짓기로 해요. 그 설계를 자하 하디드에게 맡겼죠. 이라크 출신의 자하 하디드는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해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아제르바이잔 알리예프 센터, 베이징 갤럭시 소호 등이 대표 작품이에요. 하지만 과거에는 지나치게 실험적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실제로 준공된 건물은 없는, ‘건축물 없는 건축가’로 남아 있었죠.


그런 자하 하디드가 처음으로 완공할 수 있었던 건물이 바로 비트라 소방서예요. 소방서 안에는 소방차, 샤워실, 소방관 탈의실을 위한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어요. 특이한 건 소방서의 외관이에요. 콘크리트 조각 덩어리처럼 보이는 소방서 외관은, 겹겹이 쌓인 벽 구조로 되어 있어요. 항상 위험에 예민해야 하는 건물이므로, 둥근 곡선 없이 모든 건물이 사선으로 뾰족하게 날 서 있어요.


ⓒVitra 


1993년 완공된 비트라 컨퍼런스 파빌리온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에요. 컨퍼런스 파빌리온은 안도 다다오의 첫 해외 작품이죠. 노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절제된 외관을 보면 안도 다다오의 특징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컨퍼런스 파빌리온 내부에는 다양한 회의실이 자리 잡고 있고, 건물 지하에는 큼지막한 공간들이 숨어 있어요. 아래로 꺼진 이 건물은 마치 잔디밭에 가라앉은 정사각형 안뜰처럼 보여요.


특히 파빌리온으로 이어지는 길은 마치 일본 수도원의 정원을 걷는 것처럼 설계되어 있어요. 안도 다다오는 일본 전통을 건물에 남기기 위해 최대한 많은 벚나무를 보존하고, 건물을 짓기 위해 단 세 그루의 벚나무만 베어냈다고 해요.


ⓒVitra 


ⓒVitra 


비트라 캠퍼스는 가구에서 넘어서 더 큰 디자인 세계의 허브 역할이 되도록 도왔어요. 비트라 캠퍼스를 통해 비트라는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연구가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한 공간에 모이도록 했죠. 


특히 비트라 캠퍼스의 모든 건물은 일제히 지어진 게 아니에요. 30년의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협업하는 건축가들이 늘어나는 식이었죠.


“(비트라 캠퍼스의) 아이디어는 그저 건물들을 잇는 건축 박물관을 만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장소(place)’를 만드는 거였죠. 이런 측면에서 모든 건축가의 과제는 이미 존재하는 건물에 대응하는 것이었어요. 존중심을 가지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비트라하우스는 원래 있던 박물관 색깔을 고려해 색상을 흰색에서 어두운 색상으로 변경했죠.”

-롤프 펠바움 비트라 명예 회장, 비트라 매거진


중요한 것은 색깔이 제각각인 이 건축가들이 ‘비트라 캠퍼스’라는 이름 하에 하나가 되고, 협업했다는 거예요. 마치 잘 어우러지는 거대한 콜라주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요.



#3. 가구 회사의 박물관에서 펼쳐지는 일 -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


비트라 캠퍼스는 원래 생산 시설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지만, ‘생산’보다 ‘문화’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덕분에 매년 약 35만 명 이상이 비트라 캠퍼스에 전시회를 보러, 건축 투어를 하러, 워크숍에 참여하러, 찾아온다고 하죠. 비트라는 비트라 캠퍼스를 통해 디자인 문화 산업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에요.


단순히 가구를 파는 브랜드였던 비트라가, 왜 이렇게까지 예술 산업의 허브 역할을 하고자 하는 걸까요? 롤프는 특히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단순히 제 수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세웠다면, 분명 비판적으로 받아 들여졌을 겁니다. 하지만 비트라 박물관은 디자인을 위한 박물관이었고, 우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디자인 세계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조명하고, 분석하고, 전시하고,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더 믿을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었죠. 비트라는 저에게 항상 문화 프로젝트였습니다.”

-롤프 펠바움 비트라 명예 회장, 비트라 매거진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은 매년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매년 두 개의 주요 전시와 최대 10개의 전시회를 개최해요. 전시는 본관 말고도 헤르조그 앤 드 뫼롱 건축가가 설계한 샤우데포트나 비트라 캠퍼스의 다른 장소에서 개최되죠. 본관 옆에 자리 잡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갤러리에서는 현대 작품들의 소규모 전시를 중점적으로 열어요.


그 중 비트라 샤우데포트에서는 현대 가구 400개가 넘는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는 상설 전시가 진행돼요. 샤우데포트는 180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주요 현대 가구 디자인 작품을 전시해요. 19세기의 목재 가구, 유명 디자이너들의 모더니스트 작품, 현대적인 3D 프린팅 가구, 작가를 알 수 없는 가구들까지. 샤우데포트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영구 현대 가구 디자인 연구 사이트로 인정받고 있어요.


ⓒVitra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은 가구에 대해서만 다루는 게 아녜요. 과거와 현대의 디자인적 흐름에 대한 중요한 맥락을 다뤄요. 예를 들어 2022년에는 플라스틱의 생산과 사용, 갈등에 대해 조명한 전시 <플라스틱: 우리의 세계를 다시 만들다(Plastic: Remaking Our World)>를, 2021년에는 120년 동안의 여성 디자이너를 소개한 <여기 있습니다! 디자인 분야의 여성 1900년 - 오늘(Here We Are! Women in Design 1900 – Today)>을 개최했어요.


대중에게 친근한 전시 역시 다루고 있어요. 현재(2024. 9. 21~2025. 5. 4) 열리고 있는 주요 전시 중 하나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50년 역사를 다룬 <Nike: 형태는 움직임을 따른다(Nike: Form Follows Motion)>예요. 이 전시에서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나이키가 1960년대 ‘스우시’ 로고를 만들고, 에어 맥스와 같은 상징적인 제품을 만들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주죠. 특히 나이키가 만들고 있는 ‘디자인 문화’에 대해 알려줘요.


ⓒVitra 


ⓒVitra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에서는 어쩐지 거장들의 작품만 다룰 것 같은데, 대중 브랜드 이야기를 전시하는 게 의외예요. 이건 비트라가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을 더 넓히고자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죠. 2020년부터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마테오 크리스는 말했어요.


“1900년대에 디자인 담론은 제품과 개인 인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디자인은 가구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와 세상 전체에 관한 것입니다. 현대의 대중은 비판적입니다. 그들은 맥락을 알고 싶어하죠. 박물관의 변화는 곧 디자인 논쟁의 진화와 평행합니다.”

-마테오 크리스, 람푼 인터뷰


즉, 디자인이 대중에게 더 가깝고 친근해졌으며, 사회 전체가 디자인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거예요. 그래서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은 디자인과 예술의 장벽을 허물고, 사회 전체적인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죠.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컬렉션을 전시하는 이유


비트라는 디자인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디지털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에요. 팬데믹 시기, 많은 교육 프로그램들이 문을 닫아야 했고, 디렉터 마테오 크리스는 그 대신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틀었어요. 2020년 4월, 인도 건축가 발크리슈나 도시와 함께 한 라이브 토크가 첫 출발이었어요. 이를 통해 마테오는 디지털 프로그램이 더 많은 글로벌 청중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는 걸 알게 됐죠.


“직원들에게 박물관을 발전시킬 수 있는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항상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팬데믹 봉쇄 후 첫 주에 인스타그램 라이브 토크를 시작한 것이었죠. 이전에는 항상 탄소 발자국과 많은 비용을 들여 캠퍼스의 박물관으로 여행을 올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게 달려 있었습니다.”

-마테오 크리스, 람푼 인터뷰


지금도 디지털 프로그램은 계속 되고 있어요. 화상 프로그램 줌을 통해 전문가와 만나 교육을 받고, 대화를 나눌 수 있죠.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 전문가들과의 토크 영상을 업로드하고요. 또, 온라인 컬렉션 홈페이지를 통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의 컬렉션 일부를 구경할 수 있어요. 자세한 세부 정보와 이미지 자료, 디자이너의 전기 등이 설명되어 있죠. 온라인 컬렉션은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 될 예정이에요.


ⓒVitra 


“비트라 캠퍼스의 매력은 한 장소에서 일어나지 않는 활동의 혼합에 있습니다. 여기에선 가구가 생산되고 전시되며, 디자인은 전시회에서 발표되죠. 직원들은 건축물이나 정원을 보고, 방문객은 전시회를 보거나 워크숍에 참여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홍보 전략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디자인이 우리의 일상 생활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한다는 확신에 기반한 표현이죠.”

-롤프 펠바움 비트라 명예 회장, 비트라 매거진


결국 비트라는 ‘디자인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진리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확장해 온 기업이에요. 비트라 캠퍼스는 그 명제의 요충지인 셈이죠. 비트라 캠퍼스는 단순히 비트라의 생산 시설이나 마케팅 장소가 아닌, 디자인을 확산하고, 교육하고, 경험하는 장소예요.





Reference

비트라 공식 홈페이지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MHN디자인]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불멸의 가구, Vitra

The First Major Nike Exhibition Offers a Rare Peek Into the Company’s Secret Archives

Vitra Design’s director, Mateo Kries, reimagines the role of museums in post-pandemic society

나머지 스토리가 궁금하신가요?

시티호퍼스 멤버십을 시작하고
모든 콘텐츠를 자유롭게 읽어보세요!

이 콘텐츠도 마음에 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