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잡지를 발행하는 ‘모노클’은 카페와 편집숍도 운영합니다. 잡지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서 매장을 연 것이 아닙니다. 모노클이 잡지의 지면을 벗어나 공간으로 나온 데에는 경제적 이유 이상의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더 모노클 숍 미리보기
• 정체 모를 정체성이 뚜렷한 잡지의 탄생
• 현실적이기에 더 이상적인 잡지
• #1. 잡지를 살리는 잡화 매장, 더 모노클 숍
• #2. 잡지를 알리는 잡담 공간, 더 모노클 카페
• #3. 잡지를 빛내는 잡지 매대, 키오스카페
• 정체 모를 미래지만 정체 없을 잡지
‘눈을 밟는 기억’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브로셔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입니다. 낭만적이지만 추상적이어서 구현하기 어려워 보이는 일을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과 체계를 구축한 ‘하라 켄야’가 고차원적으로 풀어냅니다. 20여 년 전에 그는 나가노 동계 올림픽의 브로셔 디자인을 총괄하면서 올림픽 참가자들이 만들 축제의 추억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브로셔를 단순히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경험을 떠올려 줄 매체로 접근하고, ‘눈을 밟는 기억’을 연상시키기 위한 브로셔 디자인을 고민했습니다. 소복히 쌓인 눈에 발자국을 내며 걸었던 기억의 풍경을 브로셔 위에 구현할 수 있다면, 브로셔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의 풍경을 불러내는 방아쇠 역할을 할 것이고 그 잔상이 동계 올림픽의 추억과 결합되어 또 다른 기억의 풍경을 남길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가노 동계 올림픽 개막식 브로셔입니다. 글자만으로도 소복히 쌓인 눈에 발자국을 내며 걸었던 기억을 연상시킵니다. ⓒNippon Design Center
‘눈과 얼음의 종이’
그가 눈을 밟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새롭게 개발한 종이입니다. 브로셔의 소재에 주목하고 푹신푹신한 흰색 종이에 문자를 모두 음각으로 새기는 디보스(Deboss) 기법으로 브로셔를 디자인했습니다. 여기에 발자국 이미지를 연상시키려 문자를 눌러 찍은 부분이 얼음처럼 반투명하게 보이는 효과를 줬습니다. 소복히 쌓인 눈은 폭신한 질감을 가지고 있지만, 발자국이 남은 눈은 밀도있게 눌려있는 디테일을 표현한 것입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구현할 수 없어서 제지 회사와 함께 새로운 방식을 연구할 정도로 눈을 밟는 기억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글자를 음각으로 표현한 브로셔와는 차이가 나고, 기억의 저편을 소환할만큼 예술적 감각을 자극합니다.
‘종이와 디자인’
종이의 소재성을 살려 브로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그가,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2년 만인 2000년에 열었던 전시회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으로 급변하던 시기에 종이책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해보자는 의도로 전시회를 기획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이책의 몰락을 우려할 때 그는 종이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정보를 유통하는 속도와 밀도, 그리고 정도 등에서는 디지털 미디어와 경쟁할 수 없으니 종이책은 그동안 해왔던 미디어의 역할을 디지털에게 넘겨주고, 물질로서의 소재성이 부각될 것이라는 통찰입니다.
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먹거리에 비유합니다. 예를 들어 달걀 1,000개를 한번에 조리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식사를 즐기기 위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만큼의 달걀을 삶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껍질을 벗겨 적당량의 소금과 함께 먹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디지털 미디어가 아니라 종이책을 선택하는 이유는 책을 들었을 때의 무게감, 페이지를 마음 가는대로 넘기는 기분, 시간과 함께 빛바래는 분위기 등 그 소재의 성질과 특징을 음미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종이책은 소재성을 어떻게 살리는지에 따라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 스스로 증명해 보였기에 그의 말에 힘이 실립니다.
그로부터 7년 후, 하라 켄야가 <종이와 디자인> 전시를 할 때 알았더라면 초대했을 법한 종이책 같은 잡지가 런던에 등장합니다. ‘모노클(Monocle)’입니다. 하라 켄야가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전시를 할 때보다 디지털 미디어가 정보 전달의 매체로서 더 견고하게 자리잡은 2007년, 타일러 브륄레(Tyler Brûlé)는 종이 매체의 한계보다는 가능성을 보며 모노클을 창간합니다.
모노클의 시작은 1호가 아닌 0호였습니다. 하지만 0호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매거진이 독자들에게 전할 촉감과 무게감 등을 테스트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종이책의 소재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고, 하라 켄야의 통찰대로라면 시작하기도 전에 성공을 예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체 모를 정체성이 뚜렷한 잡지의 탄생
모노클을 만든 타일러 브륄레는 이전에도 잡지를 창간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6년에 라이프 스타일 잡지 <월페이퍼(Wallpaper)>를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라이프 스타일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가구, 인테리어, 디자인, 건축, 여행, 패션 등의 분야를 감각적으로 다루면서 독자들이 보다 나은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제안한 덕분입니다. 열성적인 팬들이 생기자 미디어 업계의 큰손인 타임워너(Time Warner)가 230만 달러(약 25억 3,000만 원)에 인수에 나섰습니다. 창간 1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매각 후에도 타일러 브륄레는 2002년까지 남아 브랜드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임무를 마친듯 월페이퍼를 떠납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로 종이 매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타일러 브륄레는 또다시 종이 잡지 업계로 돌아옵니다. 어느 날 공항 서점에서 <이코노미스트(Economist)>와 <GQ>가 잘 팔리는 것을 보고 이 둘을 적절하게 결합한 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불현듯한 아이디어였지만, 종이 매체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기에 월페이퍼에 이어 또 한 번 잡지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모노클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글로벌 동향, 비즈니스, 문화,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브리핑(A briefing on global affairs, business, culture & design)’
모노클의 모토입니다. 보통의 잡지가 여행, 자동차, 디자인 등 카테고리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구성하는 반면, 모노클은 특정 타깃층을 중심으로 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글로벌 동향, 비즈니스, 문화, 디자인 등의 콘텐츠를 담습니다. 타깃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새로운데, 설정한 타깃 자체는 더 흥미롭습니다. 해외의 기회와 경험에 호기심이 있고 글로벌 마인드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타깃이며, 모노클이 타깃하는 독자들의 평균적인 모습을 도출하면 평균 연봉 20만 파운드(약 3억 원) 이상으로 1년에 해외 출장을 10번가량 가고, 5번의 휴가를 즐기며 도시에 거주하는 금융, 디자인 업계 등의 CEO입니다. 여기에 잡지의 개념도 달리했습니다. 일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무크(Mook[Magazine+Book])지에서 영감을 받아 한 번 쓱 읽고 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읽는 데 2주가 넘게 걸리고 보관할 가치가 있는 잡지를 만드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책에 가까운 잡지입니다.
기존의 기준으로는 정체 모를 잡지입니다. 라이프 스타일과 비즈니스 코너 중 어디에 놓여있는 것이 적합한지도, 영국 국내 독자와 해외 독자 중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책처럼 읽어야 하는지 잡지처럼 읽어야 하는지도 모호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나면 모노클의 정체성은 뚜렷합니다. 모노클이 타깃하는 독자라면 모노클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매달 8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모노클의 브랜드 정체성에 끌려 모노클을 찾습니다.
타일러 브륄레가 콘텐츠를 바라보는 관점이 모노클의 정체 모를 정체성을 만드는 데도,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종이 잡지를 고수하는 데도 한몫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읽는 것이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read.)”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기기로 콘텐츠를 볼 경우 타인의 시선에서 봤을 때 콘텐츠 내용이 아니라 기기의 브랜드만 보이지만, 종이로 콘텐츠를 읽을 때는 겉면에 보이는 제목 혹은 브랜드가 콘텐츠 내용을 짐작케하고 읽는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종이 잡지를 기획하면서 독자들의 정체성을 상징해줄 컨셉과 디자인에 신경을 씁니다. 독자들이 정보를 전달받는 수단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미디어를 활용할 것이라는 예측을 스스로 증명하며, 미디어 업계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현실적이기에 더 이상적인 잡지
종이 잡지의 매력이 충분하더라도 수익을 낼 수 없다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타일러 브륄레는 콘텐츠를 바라보는 철학적이고 낭만적인 관점과 달리 잡지를 사업으로 접근할 때만큼은 현실적입니다. 소셜 미디어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 중에 돈을 낼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는 소셜 미디어 등의 매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노클에게 돈이 되는 영역은 무엇이고 돈을 내는 주체들은 누구일까요?
모노클의 기본적인 수익은 구독료에서 나옵니다. 6파운드(약 9,000원)의 매거진을 매달 8만 명 정도가 보니 잡지 판매로만 연간 약 84억 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합니다. 독자수의 25% 정도는 정기 구독자들인데, 고정 독자수를 늘리기 위해 정기 구독료 가격 체계도 특징적으로 설계했습니다. 보통은 연간 단위로 구독할 경우 가격 할인을 해주는 반면 모노클은 1년 정기 구독할 경우 100파운드(약 15만 원)로 더 비쌉니다.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더해 정기 구독자를 늘려나가기 때문입니다.
정기 구독할 경우 연간 발행하는 10권의 모노클 매거진뿐만 아니라 휴가 시즌인 7월에 발간해, 덜 알려진 여행지들을 소개하는 여행 콘텐츠 <이스케이피스트(Escapist)>와 연말에 발간해 모노클 편집팀의 관점으로 다음 해를 미리 보는 콘텐츠인 <포캐스트(Forecast)> 등 총 12권의 매거진을 보내줍니다. 여기에 모노클 매거진을 담고 다니기에 최적화된 토트백도 보내주고, 온라인 사이트 콘텐츠를 제한없이 볼 수 있게 해주며, 모노클이 주최하는 이벤트에 초대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합니다. 또 하나의 눈에 띄는 혜택은 해외 배송에 따른 별도의 배송료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막론하고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독자들을 타깃하고 있으므로 해외 배송이라는 개념을 사실상 없앴습니다.
또한 모노클도 잡지의 전통적 수익 모델인 광고에서 매출을 올립니다. 하지만 광고주를 대하는 방식이 남다릅니다. 우선 광고주가 돈을 낸다고 해서 광고를 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노클 독자들이 지향하는 삶과 어울리는 광고주의 광고만 게재합니다. 게다가 광고주가 만든 광고를 그대로 지면에 내보내기도 하지만 협찬 기사인 애드버토리얼(Advertorial) 형태로 광고를 티나면서도 태나게 정보화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우스 티롤(South Tyrol) 지역 관광청이 광고주라면 광고주를 숨기는 보통의 애드버토리얼과 달리 ‘사우스 티롤 X 모노클’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것을 밝히고, 모노클 편집팀의 눈으로 특별 여행 가이드를 제작해 모노클에 담습니다. 또한 광고주가 아우디(Audi)라면 마찬가지로 ‘아우디 X 모노클’을 표기하고, 자율 주행 자동차의 미래에 대한 기사를 기획하는 식으로 광고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애드버토리얼이 모노클의 광고 매출 중 60%를 차지합니다.
돈 되는 영역에서 돈 내는 주체들에게 확실한 대우를 해주면서 수익을 창출하지만 잡지에만 갇혀 있으면 확장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노클은 기존의 틀을 깨며 잡지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잡지의 틀을 깨고 미디어로서의 브랜드를 키워나갑니다.
#1. 잡지를 살리는 잡화 매장, 더 모노클 숍
모노클이 잡지의 틀을 깨고 나와 첫 번째로 선보인 결과물이 제품 판매 매장인 더 모노클 숍입니다. 처음부터 상설 매장을 연 것이 아닙니다. 해러즈(Harrods) 백화점 내에 팝업숍을 열어 몇 주 동안 제품들을 판매해보면서 가능성을 확인한 후 1년가량을 준비해 2008년 11월에 더 모노클 숍을 엽니다.
더 모노클 숍 전경입니다. 매릴번 지역에 위치한 본사 근처에 있습니다.
더 모노클 숍도 모노클 잡지처럼 기존의 편집숍이나 제품 판매 매장과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매장의 크기가 9m2 정도로 리테일 매장이라고 하긴엔 작은 편입니다. 매장을 운영하는 직원의 개인 사무실 공간에 제품을 놓고 판매하는 듯한 분위기로, 다양한 제품을 취급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한 번에 4명이 들어가면 쇼핑은커녕 함께 서있기도 힘들만큼 좁아 다수의 고객에게 팔 수도 없는 환경입니다. 유동 인구를 대상으로 대량 판매를 하려는 접근과는 거리가 멉니다. 또 다른 특징은 모노클의 안목으로 선별한 제품들을 판매하는데 하나같이 컬래버레이션 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갖다 놓고 유통만 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모노클이 애정하는 브랜드들과 기획을 함께해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입니다.
모노클이 컬래버레이션하여 히트를 친 제품이 바로 토트백입니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기본에 충실한 가방을 만드는 일본 브랜드 포터(Porter)와 협업하여 토트백을 만들었는데 1년 남짓한 기간동안 8,000개 이상을 판매해 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39억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더 모노클 숍을 열고 컬래버레이션 토트백을 판매한 덕분에 2008년 금융 위기로 많은 잡지사들이 무너질 때 모노클은 버틸 수 있었고, 홍콩 지사의 개설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모노클 잡지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브랜드들과 협업하며 컬래버레이션 제품 종류를 늘려갑니다.
모노클에서 발행한 단행본과 가방 브랜드 포터와 협업하여 만든 가방입니다. 포터 가방은 더 모노클 숍의 대표 상품입니다.
문구로 시작해 패션 잡화로 영역을 확장하며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델포닉스(Delfonics)와 함께 여권 지갑 등의 제품을 만들고, 전 세계적으로 몇 개 남지 않은 전통 편물 기계로 100% 코튼 소재로만 옷을 만드는 일본 브랜드 루프휠러(Loopwheeler)와는 여행할 때 입기 편안한 가디건을 만듭니다. 또한 알루미늄 소재로 시그니처 캐리어를 만든 독일 브랜드 리모와(Rimowa)와 협업해 여행용 캐리어를 제작해 판매합니다. 이처럼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독자들이 여행을 다닐 때 필요한 제품들은 물론, 그들이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디퓨저, 향수, 실내화 등의 제품들도 정체성이 뚜렷한 브랜드들과 컬래버레이션하여 재탄생시킵니다.
장인정신이 깃든 타월 브랜드 콘텍스와 협업하여 만든 타월과 슬리퍼입니다.
@아로마와 협업하여 만든 요시노 히노키 디퓨저를 비롯해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제품들을 판매합니다.
음향기기 업체 레보와 협업하여 만든 라디오입니다. 이 라디오를 통해 인터넷 라디오 방송 채널인 ‘모노클24’를 청취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물건을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컬래버레이션하여 새롭게 만드는 더 모노클 숍의 접근은 단순히 광고 지면만 파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콘텐츠로 재생산해내는 애드버토리얼 기사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리테일 관련 매출이 전체의 17%가량을 차지할 만큼 사업적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도 큽니다. 모노클 팬들에게 모노클스러운 제품들을 판매하면서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기 때문에 해당 브랜드의 팬이지만 모노클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모노클에 대한 관심을 갖게하는 역할도 합니다.
#2. 잡지를 알리는 잡담 공간, 더 모노클 카페
더 모노클 숍만큼이나 모노클 브랜드를 알리는 데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더 모노클 카페입니다. 자연스러운 수순같아 보이지만, 모노클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본 디자인 회사가 카페를 만들자고 먼저 제안했고, 모노클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2011년 10월에 런던이 아니라 도쿄에 더 모노클 카페를 오픈했습니다. 글로벌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모노클다운 시도입니다. 도쿄에서의 성공적 운영을 바탕으로 모노클은 2013년 4월에 런던의 본사 근처에 두 번째 카페를 엽니다.
더 모노클 카페 전경입니다. 더 모노클 숍과 마찬가지로 본사 근처에 위치해 있습니다.
런던에 위치한 더 모노클 카페는 유럽풍이 아니라 일본풍에 가까운 분위기입니다. 일본 디자이너 요시츠구 타카기가 이끌고 있는 모노클 디자인팀이 더 모노클 카페 도쿄 지점의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모노클이 추구하는 바를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정갈한 느낌의 매장 곳곳에서 모노클의 콘텐츠, 제품, 행사 등에 대한 홍보 포스터를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고객들은 모노클이 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카페가 모노클의 소식을 전하는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더 모노클 카페 내부의 한 쪽 벽면에는 모노클에서 발행한 시티 가이드북 시리즈, 모노클에서 컬래버레이션해 판매하는 제품들, 모노클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 등에 대한 정보를 안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더 모노클 카페에서는 매릴번 지역의 지도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매릴번에서 가볼 만한 장소들을 선정해 지도 위에 표시했을 뿐만 아니라, 모노클의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도 홍보합니다.
모노클이 카페에서 그들의 비즈니스를 알리는 방법은 홍보 포스터 외에도 다양합니다. 초콜릿 뒷면에 모노클 정기 구독에 대한 정보를 담아 초콜릿을 공짜로 나눠줍니다. 구매 전환율은 측정하기 어렵겠지만 정기 구독에 대한 내용을 달콤하게 전달하기에 홍보에 따른 부정적 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노클 잡지와 음료를 세트로 묶어 6파운드(약 9,000원)에 판매합니다. 모노클 잡지가 6파운드이니 잡지를 사면 2.5파운드(약 3,800원)의 음료를 공짜로 제공하는 셈입니다. 커피를 마시러 온 고객들에게 음료는 그냥 드릴테니 모노클 잡지를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가격 구성입니다.
더 모노클 카페에서는 초콜릿도 공짜로 나눠줍니다. 초콜릿의 패키지 뒷면에는 모노클 정기 구독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모노클 잡지와 음료 세트가 6파운드입니다. 모노클 잡지의 가격이 6파운드이니, 잡지를 사면 음료를 공짜로 주는 셈입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간접적인 홍보를 하나 더 합니다. 더 모노클 카페에선 여느 카페와 달리 배경 음악 대신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는데, 이 방송이 모노클에서 제작하는 방송 콘텐츠입니다. 감도 있는 모노클이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라디오 방송에 손댔을 리 없습니다. 오히려 독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에 2011년부터 24시간 방송하는 디지털 라디오 서비스인 ‘모노클 24’를 시작했습니다. 모노클 독자층은 바쁘며 이동이 잦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일을 하거나 이동하면서 영상 등의 시각적 콘텐츠를 즐기기 어려우니, 다른 일과 병행하며 들을 수 있는 청각적 콘텐츠가 적합하리라 판단한 것입니다.
모노클 24에선 다양한 호스트가 일간 브리핑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콘텐츠를 다룹니다. 카페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들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흥미로운 인터뷰를 접한 고객들은 모노클 24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도가 높아지며, 카페를 나선 후에는 청취자가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2016년 기준으로 모노클 24의 청취자는 월 평균 약 100만 명이며, 이는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어난 숫자입니다. 카페에서 들려주는 라디오 방송이 청취자를 늘리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한 건 아니겠지만 한몫 거든 건 분명합니다.
#3. 잡지를 빛내는 잡지 매대, 키오스카페
런던에는 더 모노클 카페 말고도 모노클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하나 더 있습니다. ‘키오스카페(Kioskafe)’ 입니다. 고객 접점을 늘리고, 모노클 브랜드를 알릴 목적이면 더 모노클 카페 2호점을 내면 될 일인데, 모노클은 간판을 바꿔 단 카페를 2015년 9월에 오픈했습니다. 게다가 모노클이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모노클은 어떤 이유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것일까요?
키오스카페 전경입니다. 교통의 요지인 패딩턴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키오스카페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신문과 잡지, 그리고 간단한 스낵 등을 파는 간이형 점포인 키오스크(Kiosk)와 카페를 결합한 공간입니다. 유럽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오스크를 80m2의 공간에 모노클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모노클에서 만든 콘텐츠만 소개하는 더 모노클 카페와 달리 키오스카페에서는 모노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엄선한 100여 종의 잡지와 신문을 제안하며 판매합니다. 또한 더 모노클 숍과 더 모노클 카페가 매릴번(Marylebone) 지역에 위치한 모노클 본사 근처에 모여있는 반면 키오스카페는 교통의 요지 패딩턴(Paddington) 지역에 있습니다. 그동안의 모노클의 시도와는 다른 행보입니다.
키오스카페에서는 더 모노클 카페와 달리 모노클 잡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엄선한 100여 종의 잡지를 판매합니다.
키오스카페 화장실에도 모노클에서 발행한 잡지들을 진열해 놓았습니다. 런던에서 가장 지적인 화장실입니다.
모노클이 모노클이라는 틀을 깨고 다양한 잡지를 파는 공간을 만든 건 잡지를 구매하는 환경에도 변화가 있어야 종이 매체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잡지 시장과 모노클 잡지는 별개가 아니고, 잡지 시장이 살아야 모노클도 살 수 있다는 거시적인 접근입니다. 여기에다가 최고의 잡지들은 그에 어울리는 공간에서 판매해야 고객에게 유기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고객 지향적인 관점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잡지 판매 공간은 새롭게 재탄생시켰지만, 타깃 고객만큼은 변화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십거리를 다루는 잡지들은 배제하고 타깃 고객들이 지적유희를 느낄 수 있는 잡지들을 선별해 진열합니다. 최신 뉴스가 아니라 과거의 사건을 시간을 두고 되돌아보는 <딜레이드 그래티피케이션(Delayed Gratification)>,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인 <뽀빠이(Popeye)>, 하나의 브랜드를 입체적으로 소개하는 <매거진 B>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글로벌하게 이동하는 타깃 고객들을 고려해서 그들이 런던에서도 모국의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전 세계 2,500여 종의 신문을 NOD(Newspapers on Demand) 방식으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3파운드(약 4,500원)를 내고 신문 리스트에서 원하는 신문을 선택하면 즉석에서 신문을 출력해서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언론사에서 인쇄한 신문을 배송받는 모델로는 비용 때문에 엄두도 못 낼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갓 나온 신문의 뜨뜻한 온기가 따뜻한 커피와 만나니 신문도 새로워집니다.
전 세계 2,500여 종의 신문을 NOD(News-papers on demand) 방식으로 출력해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런던을 여행하며 커피와 함께 한국의 신문을 보는 경험이 낭만적입니다.
키오스카페에서는 잡지와 신문 뿐만 아니라 샴푸, 칫솔, 치약, 로션, 양말, 펜, 우산 등 여행에 필요한 제품들도 함께 판매합니다. 세계에 퍼져있는 타깃 고객들이 런던 여행을 하면서 들렀을 때, 급하게 여행 용품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잡지 매장에서 여행 용품을 판매하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모노클의 타깃 고객 특성을 고려하면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정체 모를 미래지만 정체 없을 잡지
“영혼을 울리는 것이라면 어떤 문화와도 공명합니다. 진짜 글로벌이란 건 획일화되고 거대화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부분과 상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더 겔만(Alexander Gelman)의 말이자 그가 제시한 ‘포스트글로벌(Postglobal)’ 컨셉의 핵심입니다. 포스트글로벌은 획일화를 위한 글로벌도 아니고, 현지화를 통한 글로벌도 아닌 개념입니다. 본질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규모의 경제가 없더라도 지역에 관계없이 글로벌 어느 곳으로나 확산될 수 있고, 문화권에 따라 재해석되며 인위적인 변형 없이도 현지화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도 모노클 독자라는 공통점으로 금새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하는 모노클 에디터 앤드류 턱(Andrew Tuck)의 설명에서 모노클의 포스트 글로벌적 속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에디터의 정성적인 언급 뿐만 아니라 판매에 관한 정량적인 통계에서도 모노클의 포스트 글로벌적 특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잡지 판매 부수 중 80% 이상이 영국 외의 국가에서 판매될 정도로 글로벌하고, 판매 부수 상위 국가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독일 순인 반면 광고 수익 상위 국가는 스위스, 이탈리아, 미국, 일본, 독일 순으로 상관 관계가 낮습니다. 판매 인기 지역과 광고주가 몰리는 지역이 다른 건 지역에 대한 구분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모노클의 이러한 포스트 글로벌적 속성이 모노클의 경쟁력이자 미래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모노클의 정체성에 공명할 독자들을 늘려나가며, 그들에게 모노클 잡지 외에도 모노클스러운 콘텐츠들을 제공하면서 모노클은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모노클은 2013년부터 모노클 가이드 시리즈, 도시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등으로 단행본 사업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모노클의 독자라면 관심을 가질 법한 콘텐츠입니다. 또한 2015년부터는 ‘삶의 질(Quality of Life)’ 컨퍼런스를 만들어 컨퍼런스 사업으로도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타일러 브륄레가 ‘모노클의 팬들이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자신과 비슷한 독자들을 만나고 싶어 하기 때문에 행사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만큼 컨퍼런스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모노클이 그려나갈 미래의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모노클의 정체성이 흐려지지 않는 한 정체 없이 진화해나갈 것입니다.
Reference
• 디자인의 디자인(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번역, 안그라픽스)
• 매거진 B Vol.60 모노클(제이오에이치 편집부 지음, JOH & Company)
• 모노클, 미디어를 말하다 - Monocle media summit(정선영 외 1명 지음, 퍼블리)
• 글로벌 매거진 ‘모노클’은 어떻게 종이매체의 건재를 알렸나?, 생각노트
• 연 35% 성장하는 영 잡지 ‘모노클’ 대표 타일러 브륄레, 동아일보
• Monocle magazine funds foreign bureau on sales of tote bags, The Guardian
• Publishers set up retail operations to diversify revenue, Digiday
• How Monocle found money in radio, Digiday
• The monocle cafe on 18 Chiltern street, London, UK, Yatzer
• 타일러 브륄레의 Trend, 잡지를 말하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블로그